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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두 번째로 봤을 때, 화면이 꺼지고 나서야 뭔가 단단한 것이 가슴 안쪽에 남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라라랜드는 사랑 이야기를 빌려 꿈과 예술, 그리고 그것을 쫓는 사람들이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상실을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꿈과 상실이 빚어낸 장면들
직접 겪어보니 영화를 처음 볼 때와 두 번째 볼 때 전혀 다른 작품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드뭅니다.
극의 초반,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허공을 가로질러 춤을 추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씬은 단순한 뮤지컬 영화의 볼거리가 아닙니다. 데이미언 차젤 감독은 여기서 '매직 리얼리즘(Magic Realism)'이라는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매직 리얼리즘이란 현실적인 배경 속에 환상적인 요소를 아무런 설명 없이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서술 방식입니다. 두 사람이 중력을 벗어나 별 사이를 유영하는 그 장면은 꿈과 현실의 경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이들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영화 후반의 '에필로그 시퀀스'입니다. 에필로그 시퀀스란 본 이야기가 끝난 뒤 덧붙여지는 장면들로, 관객에게 인물들의 현재를 보여주거나 여운을 남기는 역할을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각자의 꿈을 이룬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치고, 세바스찬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면서 '이랬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 순간 저는 숨을 멈췄습니다. 행복한 상상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이 나누는 눈빛, 그것만으로 이 영화는 할 말을 다 한 셈이었습니다.
라라랜드에서 꿈과 상실이 공존하는 방식은 독특합니다. 두 주인공 모두 꿈을 이루는 데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를 잃습니다. 영화는 이것을 비극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하게, 마치 강물이 합쳐졌다가 하류에서 자연스럽게 갈라지듯 표현합니다. 처음 볼 때는 그 담담함이 아쉬웠는데, 두 번째 볼 때는 오히려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뮤지컬 영화를 움직이는 OST와 소품들
뮤지컬 영화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 OST는 인물의 감정을 직접 전달하는 '내러티브 장치(Narrative Device)'입니다. 내러티브 장치란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거나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데 사용되는 모든 요소를 뜻합니다.
라라랜드의 대표 OST는 다음과 같습니다.
- City of Stars - Ryan Gosling, Emma Stone
세바스찬과 미아가 부두 위를 걸으며 처음으로 마음을 나누는 장면에 흐르는 곡으로, 꿈을 향한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 Mia & Sebastian's Theme - Justin Hurwitz
피아노 선율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 전체를 요약하는 곡입니다. 영화 곳곳에서 반복되며 감정의 결을 달리합니다.
-Someone in the Crowd - Emma Stone
오디션을 앞두고 미아와 친구들이 파티로 향하는 오프닝 시퀀스의 곡으로, 화려함 뒤에 숨은 조급함이 담겨 있습니다.
- Audition (The Fools Who Dream) - Emma Stone
미아가 마지막 오디션에서 부르는 곡으로, 이 영화 전체의 철학을 한 곡에 압축한 장면입니다. 솔직히 이 장면에서 눈물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 Another Day of Sun - Company
고속도로 교통체증 위에서 펼쳐지는 오프닝넘버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무명인들의 이야기를 단 한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영화 속 소품들도 의미 없이 놓여 있지 않습니다.
세바스찬의 재즈 바 포스터는 그가 이루고 싶은 꿈의 형태를 상징합니다. 그 포스터를 고집스럽게 벽에 붙여두는 장면에서, 관객은 그가 타협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미아의 원피스, 특히 노란 드레스는 극 중 그녀의 감정 상태를 반영하는 시각적 신호입니다. 노란색은 희망과 동시에 고독의 색으로 쓰였고, 미아가 처음 꿈에 부풀어 있을 때 이 색이 집중적으로 등장합니다.
세바스찬의 피아노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품입니다. 처음 두 사람이 만나는 계기도, 마지막 에필로그를 여는 것도 모두 그 피아노입니다. 피아노는 그의 꿈 그 자체이자, 두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언어였습니다.
해피엔딩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영화 비평 전문 매체인 로저 에버트 공식 사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차젤 감독은 의도적으로 1950~60년대 할리우드 뮤지컬의 색채와 촬영 기법인 '테크니컬러(Technicolor)' 방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복고적 감수성을 담아냈습니다. 테크니컬러란 필름에 색을 입히는 초기 컬러 영화 제작 공정으로, 채도가 높고 선명한 색조가 특징입니다. 이 덕분에 라라랜드의 화면은 현실보다 조금 더 꿈처럼 보입니다.
영화 제작론에서는 이런 엔딩 방식을 '오픈 엔딩(Open Ending)'이라고 부릅니다. 오픈 엔딩이란 결말을 명확하게 해소하지 않고 관객의 해석에 맡기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라라랜드의 엔딩은 완전한 오픈 엔딩도 아닙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이루었고, 서로에게 웃음을 남겼습니다. 그 미소가 고통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건 관객 자신이 꿈과 관계 사이에서 무언가를 포기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미국영화협회(AFI)가 선정한 위대한 영화 음악 목록에도 이 영화의 음악이 이름을 올렸을 만큼, 라라랜드는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 현대 뮤지컬 영화의 기준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보면 엔딩 이후의 그 침묵을 제대로 가져갈 수가 없습니다. 꿈을 위해 무언가를 미뤄둔 적이 있는 분, 혹은 사랑과 일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아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가 유독 다르게 읽힐 겁니다. 라라랜드는 그런 분들에게 드리는 영화입니다.
비슷한 결을 가진 영화로는 [위플래쉬]와 [비긴 어게인]을 추천합니다. 위플래쉬는 꿈을 향한 집착이 얼마나 사람을 갈아 넣을 수 있는지를, 비긴 어게인은 음악과 상실이 어떻게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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