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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 영화 속 건물 앞 두 사람, 평론가의 시선, 추천 영화
콜럼버스 영화 속 건물 앞 두 사람, 평론가의 시선, 추천 영화

 

 

어떤 영화는 당신이 보는 게 아니라 영화가 당신을 들여다보는 느낌을 줍니다. 코고나다 감독의 장편 데뷔작 〈콜럼버스〉(2017)가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답게 정적이고 섬세한 시선으로,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콜럼버스를 배경으로 두 인물의 짧고 깊은 교류를 담아냈어요. 존 조와 헤일리 루 리처드슨의 절제된 연기가 빛나고, 음악은 포스트-록 밴드 해먹(Hammock)이 맡아 건물처럼 층층이 쌓이는 사운드로 영화 전체를 감쌉니다. 단 7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지만, 2017 선댄스 영화제에서 전 세계 첫 상영과 함께 거장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 건물 앞에서 멈춘 두 사람, 그리고 나의 이야기

이 영화의 핵심 장치는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의 모든 시각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연출 방식입니다. 카메라가 무엇을 어디에 담느냐가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죠. 코고나다는 인물을 건축물 안에 가두듯 프레임에 배치하며 "머문다는 것"과 "떠난다는 것"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냅니다.

 

서울에서 번역 일을 하던 한국계 미국인 진(존 조)은 갑작스럽게 아버지 이재용 교수가 콜럼버스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향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안고 낯선 도시를 떠돌던 진은, 도서관 계약직으로 일하며 건축을 사랑하는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를 만나게 되죠. 케이시는 마약 중독 이력이 있는 엄마를 돌보느라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도시에 묶여 있습니다.

영화 속 케이시의 모습을 보며, 문득 오랫동안 소원했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낯선 도시에 발을 디뎠던 나의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병실을 지키는 시간은 숨이 막힐 듯 답답했고,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모더니즘 건축물들은 차가운 콘크리트 벽처럼 나를 억누르는 것만 같았죠. 그러던 어느 날,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도서관 건물 앞 계단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깊은 상처를 섣불리 들추지 않은 채, 그저 눈앞에 서 있는 정교한 유리와 철골 구조물의 선과 면에 대해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정형화된 공간 속에서 흘러나오는 침묵과 담담한 문답 속에서, 역설적으로 오랫동안 꽁꽁 얼어붙어 있던 내면의 고독과 원망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기묘한 치유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케이시가 에로 사리넨의 어윈 유니온 뱅크(Irwin Union Bank) 앞에서 "여기 있으면 괜찮아진 것 같아요"라고 말할 때의 먹먹함은, 바로 그 공간이 주는 묵직한 고요함과 내면의 치유를 저 역시 통과해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 평론가의 시선: 절제 속에 쌓이는 감정과 미학적 한계

영화의 주제는 단순히 "건축이 아름답다"가 아닙니다.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 그리고 '머문다'는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는 영화입니다. 앙상블(Ensemble) 구성 속에서 존 조는 특유의 내성적인 에너지로 진이라는 인물에 깊이를 불어넣고, 헤일리 루 리처드슨은 자신을 묶어두는 것들에 맞서면서도 그것을 놓지 못하는 케이시의 복잡한 심리를 표정 하나로 완벽하게 묘사합니다.

[평론가로서의 생각과 비판]
이처럼 영화는 인물들의 내면적 상처를 자극적인 신파로 소비하지 않고, 정갈한 건축적 미장센의 여백 속에 담아내는 세련된 연출을 선보입니다. 그러나 고도로 계산된 시각적 대칭과 정적인 롱테이크는 때로 인물들의 감정선마저 지나치게 억제하여 서사의 활력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공간의 아름다움에 매몰된 나머지 인물 간의 갈등이 지나치게 미시적으로만 다뤄지며, 현실적인 삶의 고통을 지나치게 탐미적이고 세공된 예술적 액자 속에 가두어둔 듯한 나른한 공허함을 남긴다는 비판 역시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코고나다를 "건축과 영화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희귀한 감독"으로 평가하고, 영국영화협회(BFI)가 2010년대 최고의 독립 영화 중 하나로 선정한 이유는 이 영화가 가진 독보적인 '여백의 미' 덕분일 것입니다.

 

 

 

✉️ 이런 분들에게 꼭 건네고 싶은 영화

화려한 액션도, 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내러티브 미니멀리즘(Narrative Minimalism), 즉 사건보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이야기 방식을 취하고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느리다고 느낄 수 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참 그 여운이 남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누군가를 위해 오래 기다려온 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잊어버린 분, 혹은 어느 오후에 아무 이유 없이 혼자 조용히 앉아 있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는 분이라면 이 영화는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에 가깝습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1995) 시리즈를 좋아하셨다면, 낯선 도시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언어로 서로를 알아가는 감성의 결이 아주 닮아 있어서 더 반가울 것입니다. 어떤 영화는 보고 나서 바로 잊히지만, 〈콜럼버스〉는 며칠 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때 불쑥 떠오르는 종류의 작품입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sMVLDFPSmM8&t=208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