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체리 향기 영화 속 인간의 신념, 삶의 구원, 영화와 현실
체리 향기 영화 속 인간의 신념, 삶의 구원, 영화와 현실

 

 

 

 

작고 평범한 일상적인 것,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삶을 지탱시키는 목적은 돈이나 명예 같은 것이 아니라 작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한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내가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것. 그리고, 영화 속 이 말이 좋았습니다. " 의사는 아픈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죠. '당신은 몸에 병이 든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겁니다.' 마음의 병은 생각을 바꾸면 낫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이게 왜 명작이지?"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황량한 흙먼지 길 위에서 차 한 대가 사람을 태우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게 전부인 영화였거든요. 영화가 끝난 후 한참이 지났는데도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 이유를 정리하다 보니 결국 제 이야기와 비슷한 점이 있었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어서 좋았고, 추천드리고 싶은 영화 중에 영화입니다. 

 

 

 

인간의 신념 - 거절당하는 죽음의 제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1997년작 「체리 향기」는 이란의 한 중년 남성 바디가 자신의 죽음을 도와줄 조력자를 구하는 단 하루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스스로 구덩이를 파 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줄 사람에게 큰돈을 제안합니다. 플롯(plot)이란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건의 인과 연쇄를 의미하는데, 이 영화의 플롯은 거의 존재하지 않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건이 쌓이는 게 아니라 대화가 반복될 뿐이니까요.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죽음을 다룰 때는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극적 사건, 트라우마, 경제적 파탄 같은 것들이죠. 그런데 제 경험상 실제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사업이 완전히 무너지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후 극도의 고립감에 빠졌을 때, 누군가 "왜 힘드냐"고 물으면 딱 하나의 이유를 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진 느낌이었습니다. 키아로스타미가 바디의 이유를 비워 둔 건 그래서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디가 조력자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그는 총 다섯 명을 거절당한 끝에 노인을 만납니다. 거절당하는 과정이 길면 길수록 그가 살아 있는 시간도 길어집니다. 저는 이게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조력자를 구하는 행위 자체가 죽음을 향한 관성인 동시에, 적어도 그것을 구할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는 무의식의 방어선처럼 읽혔습니다.

 

 

 

삶의 구원 - 노인의 체리 이야기

영화의 핵심은 노인의 고백에 담겨 있습니다. 그는 자살을 시도하러 체리나무에 올랐다가 잘 익은 체리를 발견하고, 그 달콤함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이 장면을 "삶의 소소한 아름다움이 사람을 구한다"는 메시지로 읽는 분들이 많습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저는 조금 다른 지점에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란 인간이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철학적 입장입니다. 이 영화는 그 실존주의적 물음을 체리 한 알로 극도로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노인을 살린 건 체리의 마법이 아니라, 오감(五感)이 회복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절망 속에서는 감각 자체가 마비됩니다. 아무것도 맛도 없고, 냄새도 없고, 아름다움도 눈에 안 들어옵니다. 그 마비 상태에서 달콤한 과즙 한 방울이 감각을 다시 깨운 겁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겠다는 생각으로 깊은 산속 절벽까지 찾아갔던 날, 바람을 타고 아카시아 꽃향기가 밀려왔습니다. 거창한 위로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냥 향기가 코를 건드렸고, 반사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습니다. 그 순간 발밑의 들꽃과 오후의 햇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감각이 돌아오니까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노인이 체리로 살아났다고 했을 때 저는 즉시 이해했습니다. 이건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정서 조절(emotion regulation) 연구에서는 감각 자극이 심리적 위기 상황에서 인지 전환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보고합니다. 즉, 극단적 감정 상태에서 오감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자극이 사고의 흐름을 잠시 끊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키아로스타미는 1990년대에 이미 그것을 체리 한 알로 보여줬습니다.

 

바디가 노인과 헤어진 직후 다시 박물관으로 달려가는 장면도 이 맥락에서 읽힙니다. 노인의 이야기가 바로 닿지 않고 시간 차를 두고 도착한 겁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이런 시차(time lag)가 존재합니다. 시차란 정보나 감정이 전달된 후 실제 반응이 나타나기까지의 지연 시간을 말하는데, 위기 상황일수록 이 시차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디가 노인에게 "여러 번 확인해 달라"라고 신신당부한 것, 저는 그 문장이 가장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살고 싶다는 말을 그렇게 에둘러하는 사람의 마음이 느껴졌거든요.

 

 

 

 

영화와 현실 - 일상으로 돌아오는 마음의 균열

이 영화를 두고 "지루하다", "불친절하다"는 평가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느꼈으니까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란 표현 수단을 극도로 줄여 본질만 남기는 예술 방식인데, 이 영화는 그것을 거의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차 안, 흙먼지 길, 대화.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비교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같은 자살을 소재로 한 서사 영화들이 원인, 갈등, 해소, 교훈을 차례로 제시할 때, 관객은 "저 사람은 저래서 힘든 거구나"라고 정리하고 거리를 둡니다. 이 영화는 그 거리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유를 모르니 각자의 최악의 고통을 대입하게 됩니다. 그 결과 바디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삶의 끝을 생각한 모든 이의 이야기가 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약 70만 명이 자살로 사망하며,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WHO)). 그 70만 명의 이유는 70만 가지입니다. 이 영화가 바디의 이유를 특정하지 않는 것은 불친절이 아니라, 그 70만 가지 이유 모두를 포용하겠다는 선택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구조적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바디의 죽음의 이유를 끝까지 밝히지 않아 관객의 감정 이입을 극대화
  • 조력자를 찾는 과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바디의 삶에 대한 미련을 드러냄
  • 메이킹 필름 삽입으로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흐려 이야기를 현실로 확장
  • 체리라는 감각적 오브제로 실존주의적 주제를 구체화

 

마지막 장면, 구덩이에 누운 바디 뒤로 갑작스럽게 삽입되는 촬영 현장 스케치는 메타픽션(metafiction)적 장치입니다. 메타픽션이란 작품 스스로가 허구임을 드러내는 서사 기법인데,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현실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카메라에 잡힌 평범한 사람들 하나하나에게도 각자의 체리 한 알 같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결말이 감정적 몰입을 깬다는 비판도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단절이 오히려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체리 향기」는 빠른 전개나 극적 반전을 원하는 관객에게는 맞지 않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삶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이 영화는 생각보다 깊은 곳까지 닿습니다. 바디가 구덩이에서 달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영화는 끝내 말해 주지 않습니다. 저는 그 여백이 좋았습니다. 여백이 있어야 제 이야기를 넣을 수 있으니까요. 아직 체리 향기를 맡아본 적 없다면, 이 영화를 한 번 천천히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정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계신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7mcohCU-M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