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Anna, 2019) — 뤽 베송이 빚어낸 하드코어 킬러의 생존기

2019년 개봉한 프랑스 액션 스릴러 〈안나 2019〉는 뤽 베송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모두 맡은 작품이다. 〈니키타〉, 〈레옹〉으로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스크린에 각인시킨 그가, 오랜만에 자신의 시그니처 장르로 돌아온 귀환작이기도 하다.
영화 안나2019는 1990년대 초 구소련을 배경으로, 가난과 폭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KGB 킬러가 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안나는 낮에는 파리의 톱모델로, 밤에는 냉혹한 암살자로 이중의 삶을 살아간다. 여기에 KGB와 CIA 사이의 첩보전이 더해지며 숨 막히는 긴장감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러시아 출신 배우 사샤 루스를 중심으로, 헬렌 미렌, 킬리언 머피, 루크 에반스 등 탄탄한 배우진이 포진해 있으며, 비선형 구조의 반전 서사가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단순한 액션 오락물처럼 보이지만, 자유와 생존을 향한 한 인간의 치열한 선택을 담은 작품으로 읽힌다. 지금부터 〈안나 2019〉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1. 줄거리 요약
시대적 배경은 1990년대 초, 냉전의 긴장감이 채 가시지 않은 구소련 해체 직전의 러시아다. 모스크바의 허름한 시장 한편에서 마트료시카 인형을 팔던 안나는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진 일상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외모와 두뇌를 눈여겨본 KGB로부터 은밀한 제안이 들어온다. "5년만 복무하면 완전한 자유를 주겠다." 달리 선택지가 없던 안나는 그 계약에 서명한다.
혹독한 훈련을 마친 안나는 파리의 모델 에이전트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파리로 건너간다. 겉으로는 톱모델로 활동하며 화려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KGB의 지령 아래 움직이는 정예 킬러다. 런웨이 위에서는 카메라 앞에 서고, 무대 밖에서는 조용히 표적을 제거한다. 두 개의 삶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고, 안나는 그 균열 사이에서 감정을 지운 채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나 자유를 향한 길은 점점 더 좁아진다. CIA 요원 레너드가 안나의 정체를 간파하고, 미국으로의 망명을 조건으로 KGB 내부 정보 제공을 요구하면서 안나는 KGB와 CIA 사이에서 이중첩자로서의 삶에 발을 들이게 된다. 한쪽에는 KGB 리더 올가가, 다른 한쪽에는 CIA 요원 레너드가 있다. 그 사이에서 안나는 조종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처음부터 양쪽 모두를 이용하는 치밀한 계산을 세우고 있었다.
영화는 '3년 전', '6개월 후' 등의 자막으로 시간대를 자유롭게 오가며 퍼즐처럼 이야기를 구성한다. 관객이 "이미 다 알았다"라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새로운 시점이 등장해 모든 맥락을 뒤집는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드러나는 반전안나가 처음부터 KGB도, CIA도,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모든 것을 설계했다는 사실은 영화 전체를 되짚어보게 만드는 진짜 결말이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안나는 총구 대신 머리로 증명해 낸다.
2. 주요 출연진
〈안나〉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배우들의 존재감이다. 뤽 베송 감독은 이 작품을 위해 개성 강한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아, 각자의 캐릭터가 살아 숨 쉬도록 구성했다.
주인공 안나 역은 러시아 출신 모델 겸 배우 사샤 루스가 맡았다. 실제 모델 출신답게 런웨이 위에서의 우아함과 전투 장면에서의 냉혹한 강인함을 동시에 소화하며, 단순한 액션 히로인을 넘어 내면의 상처와 생존 본능을 동시에 품은 복합적인 인물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 냈다. 화면 속에서 그녀의 눈빛은 때로 공허하고, 때로는 서늘하게 빛난다. 그 온도 차이가 안나라는 인물의 핵심이다.
킬리언 머피는 CIA 요원 레너드 역을 맡았다. 안나의 정체를 파악하고 접근하는 인물로, 단순한 적도 아군도 아닌 복잡한 위치에 놓인 캐릭터다. 킬리언 머피 특유의 차갑고 계산적인 눈빛은 이 역할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며, 안나와의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을 설득력 있게 끌어간다. 넷플릭스 시리즈 〈피키 블라인더스〉를 통해 쌓아 온 강렬한 이미지가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루크 에반스는 KGB 교관이자 안나의 첫 번째 남자 알렉스 역으로 등장한다. 냉혹한 조직의 논리와 안나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로, 루크 에반스는 강인함과 취약함을 교차시키며 극의 감정적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낸다.
무엇보다 단연 돋보이는 존재는 헬렌 미렌이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경력의 베테랑 배우가 KGB 리더 올가 역으로 분해, 영화 전체를 조율하는 냉혹한 권력자를 연기한다. 위트와 잔인함을 동시에 품은 올가라는 인물을 헬렌 미렌은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소화하며, 등장하는 장면마다 화면의 무게중심을 단숨에 자신에게 끌어당긴다. 사샤 루스와의 신경전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 손꼽히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3. 평점 및 리뷰 반응
〈안나〉는 개봉 당시 평단과 대중 사이에서 온도 차가 뚜렷하게 갈린 작품이었다. 국내에서는 다음 영화 기준 평점 8.1점을 기록하며 대중적으로는 비교적 호평을 받았고, 누적 관객 수도 약 116,000명에 달했다. 반면 해외 평점 사이트 기준으로는 6점 중반대에 머물며, 글로벌 시장에서는 다소 엇갈린 반응을 얻었다.
호평의 핵심은 단연 '반전 구조'와 '액션의 밀도'였다. 시간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비선형 서사가 관객에게 퍼즐을 풀어가는 듯한 재미를 선사하며, 특히 안나의 전투 장면들은 속도감과 정교함을 동시에 갖춘 연출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헬렌 미렌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킬리언 머피의 냉정한 연기도 영화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비판적인 시각도 분명히 존재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뤽 베송의 전작 〈니키타〉,〈레옹〉과 비교하며 스토리의 깊이와 캐릭터 간의 감정선이 다소 피상적으로 처리됐다고 지적했다. 반전이 영리하긴 하지만, 너무 자주 반복되면서 오히려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도 있었다. "보는 재미는 있지만 남는 여운이 적다"는 반응이 그 대표적인 예다.
종합적으로 영화〈안나 2019〉는 완성도 면에서 뤽 베송의 전성기를 완전히 되살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강렬한 여성 주인공과 세련된 액션, 영리한 구성이 맞물려 충분한 오락성을 확보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첩보 액션 장르를 즐기는 관객이라면 후회 없이 볼 수 있는, 팝콘 무비 그 이상의 경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