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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속 시원하게 그냥 부수고, 싸우고, 웅장한 뭔가를 기대했습니다. 액션의 천제 '마동석'. 조폭 두목 역할에 연쇄살인마가 끼어든다는 설정, 어떻게 보면 황당할 수도 있는데 직접 겪어보니 초반 10분도 안 돼서 '악인전' 영화 속으로 빠져 들더군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내용 흐름과 긴장감과 틈틈이 나오는 액션 또한 영화에 몰입하게 됩니다. 배우 마동석과 김무열 그리고 김성규가 나온다니 이미지만 봐도 '와~ 재미있겠다!' 했습니다. 후회하지 않는 영화, 탄탄한 내용으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 '악인전'입니다.
연쇄살인마가 조폭을 찌른다는 발상
강경호가 처음 등장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추돌 사고를 낸 척 접근한 뒤, 아무 말 없이 칼을 꺼낸다. 분노도 없고, 이유도 없다. 그냥 찌른다. 하필 중부권을 주름잡는 조폭 두목이라는 설정이었습니다. 불법 게임장을 운영하고 라이벌 조직과 이권 다툼을 벌이는 장동수가 어느 날 밤 아무 이유 없이 연쇄살인마에게 습격당합니다. 그때 느낀 건, 이 구조 자체가 관객을 묘하게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었습니다. 보통 범죄 스릴러에서 피해자는 선량한 시민이어야 카타르시스가 작동하는데, 여기서는 피해자 자체가 범죄자입니다.
영화 속 연쇄살인마 강경호는 이른바 무동기 범죄(Motiveless Crime)의 전형을 따릅니다. 무동기 범죄란 원한, 금전, 이념 등 통상적인 범행 동기 없이 충동이나 내면의 왜곡된 욕구만으로 저지르는 범죄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범죄심리학에서는 이런 유형의 범죄자를 분류할 때 연쇄살인마(Serial Killer)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Serial Killer란 일정 기간 동안 세 건 이상의 살인을 저지르되 각 사건 사이에 냉각기(Cooling-off Period)를 두는 범죄자를 가리킵니다. 냉각기란 범행과 범행 사이에 범인이 일상으로 돌아가 겉으로는 평범하게 지내는 시간을 뜻합니다. 강경호는 이 패턴을 정확하게 따릅니다.
그날 모두 함께 회식을 하던 중 피해자가 낮에 우산을 건네받았던 여학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저는 꽤 오래 멈췄습니다. 선의와 살인이 이렇게 붙어 있을 수 있다는 연출이 영화의 공포를 단순한 고어(Gore)가 아닌 일상의 균열로 만들어줬습니다.
법의 빈틈, 그리고 한배를 탄 두 사람
형사 정태석은 처음부터 수상하다. 조폭과 유치한 팀장 밑에서 일하면서, 장동수의 불법 게임장 단속도 번번이 막힌다. 그러면서도 연쇄살인마 만은 혼자 쫓는다. 제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조폭과 형사가 어쩔 수 없이 손을 잡고, 결국 우정을 쌓는 뻔한 버디 무비(Buddy Movie) 구조를 예상했습니다. 버디 무비란 성격이나 입장이 다른 두 인물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움직이며 관계를 형성하는 장르 문법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원태 감독은 이 공식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두 사람이 손을 잡는 방식도 낯설다. 형사 정태석과 조폭 두목 장동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를 이용합니다. 태석은 장동수에게 정보가 있고, 장동수는 태석의 수사력이 필요하다. 태석이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그 전환점입니다. 이 순간부터 두 사람은 공범 관계(Complicity), 즉 한쪽이 빠져나오면 다른 쪽도 무너지는 구조 안에 갇힙니다. 공범 관계란 형사법 용어로 두 명 이상이 범죄 실현에 공동으로 관여한 상태를 의미하며, 이 영화에서는 그 관계가 의도가 아니라 상황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영화가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이 구조는 한국 형사사법 체계의 실제 문제와 연결됩니다. 범죄수익환수법이나 증인보호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서, 수사 과정의 정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조직범죄자(Organized Criminal)와 비공식 거래가 이루어지는 사례는 실제로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국내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조직폭력 관련 검거 건수는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지능화·음성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어 수사 과정의 제도적 공백이 꾸준히 지적되고 있습니다(출처: 경찰청).
이 영화의 진짜 악인은 강경호 한 명이 아닙니다. 법이라는 시스템의 빈틈, 그 빈틈을 돈과 권력으로 채우는 구조 자체가 악인입니다. 제 경험상 이 메시지를 정면으로 다루는 한국 장르 영화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영화 속 장동수가 태석에게 증인으로 출석해 달라고 협박을 받고 법정에 서는 장면에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는 걸 완전히 확신했습니다. 악인전이 이 구도에서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 법이 잡지 못한 자를, 또 다른 불법이 잡아도 우리는 정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 공범이 된 형사의 증언은, 그 자체로 증거 능력이 있는가?
- 결국 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곳인가, 아니면 가장 그럴듯한 서사가 이기는 곳인가?
증인석의 조폭, 그리고 남은 불편함
'악인전'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데, 이 영화가 끝난 뒤 극장에서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시원한 액션을 봤는데 왜 뒤가 찜찜하냐는 느낌, 그게 이 영화의 설계입니다. 많은 분들이 "마동석 액션이 시원하다"는 감상을 남깁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감상이 이 영화를 오히려 축소시킨다고 생각합니다. 이원태 감독은 인터뷰에서 선이 악을 응징하는 구도가 아니라 악과 악이 부딪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핵심은 거기에 있습니다.
영화의 서사 구조를 분류하면, 이 영화는 도덕적 모호성(Moral Ambiguity)을 장르적 문법 안에서 가장 정직하게 구현한 편에 속합니다. 도덕적 모호성이란 선과 악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아 관객이 특정 캐릭터에 단순한 윤리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만드는 서사 기법을 뜻합니다. 한국 범죄 영화 장르 내에서도 이 기법을 다룬 작품들이 평단의 주목을 받아왔다는 점은 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국내 범죄 장르 흥행 분석에서도 확인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결국 사형 선고를 받은 강경호보다 수배 중인 몸으로 교도소에 함께 들어가게 된 장동수 쪽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몸에 남은 칼자국을 직접 보여주고, 강경호가 쓴 메모를 증거로 제출한다. 법정이 이렇게 작동하는 게 맞나? 싶었다. 그런데, 강경호는 사형을 받는다. 결과가 정의처럼 보인다. 그런데, 찝찝하다?! 인간이길 포기한 자에게 진정한 지옥을 보여주겠다는 마지막 장면, 그게 복수인지 정의인지 영화는 끝까지 답을 주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면. 장동수가 강경호와 같은 교도소에 수감된다. 샤워장에서 마주치는 두 사람. 장동수가 웃는다. 복수인지 정의인지 영화는 끝까지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가볍게 보러 갔다가 생각을 얹고 나온 영화였습니다. 마동석 액션 영화로 소비하기에는 분명히 아깝습니다. 그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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