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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차 》

  • 어머니의 사랑, 믿음인가 설계인가
  • 자아 정체성, 어머니의 그늘 안에서 자라는 것
  • 모성 집착,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

 

영화 새벽의 약속 - 어머니의 사랑, 자아 정체성 그리고 집착
영화 새벽의 약속 - 어머니의 사랑, 자아 정체성 그리고 집착

 

 

한창 예민한 중학교 2학년 때 글쓰기 대회에서 떨어지고 속상한 마음에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 엄마가 들어와 조용히 말했습니다. "너 글 진짜 잘 쓰던데? 심사위원이 눈이 없나 봐." 그 한마디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없었다면 저는 글쓰기를 그날로 접었을 겁니다. 그 칭찬 한 마디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영화 새벽의 약속을 보고 나서 그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믿음인가 설계인가

이 영화를 보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 이 영화를 보면서 니나가 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아들 로맹을 위대한 인물로 만들겠다는 집념이 보통이 아니었으니까요. 가짜 패션 디자이너를 내세워 의상실을 열고, 자신의 당뇨를 숨기고, 심지어 죽기 전 250통의 편지를 미리 써두어 아들이 모르게 보내도록 부탁했습니다. 이걸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이게 사랑인가, 아니면 통제인가"라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모성 투사(Maternal Projection)란 개념을 잠깐 짚고 싶습니다. 모성 투사란 어머니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이나 욕망을 자녀에게 이식하려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니나가 과거 배우 출신이었고, 낭만적 영웅 서사를 로맹에게 심어주었다는 설정은 이 개념을 강하게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지점에서 단순히 "집착"으로 읽는 것을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니나는 로맹이 음악도, 미술도 아닌 문학을 선택했을 때, 그 선택을 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방향을 강요한 게 아니라, 아들이 스스로 찾은 길 위에 온 힘을 다해 올라탄 것입니다. 그 결이 다릅니다. 저도 제 어머니의 기대가 부담스러웠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기대는 항상 제가 먼저 선택한 것들에 대한 응원이었지, 제 의지를 꺾은 적은 없었습니다.

심리학에서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개인이 특정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니나의 편지가 로맹에게 한 일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죽은 후에도 아들의 자기 효능감을 무너지지 않게 받쳐준 것입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자아 정체성, 어머니의 그늘 안에서 자라는 것

로맹 가리는 프랑스 문학에서 공쿠르상(Prix Goncourt)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예요. 공쿠르상이란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매년 단 한 편의 소설에만 수여되는 상입니다. 그런데 두 번이나 받기 위해 그는 에밀 아자르(Émile Ajar)라는 필명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규정상 같은 작가는 두 번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정체성을 숨기고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낸 것인데, 그 방식이 어머니 니나가 노숙 배우를 유명 디자이너로 둔갑시키던 방식과 너무나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로맹은 어머니에게서 "이야기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물려받은 게 아닐까 싶네요.

나만 느낀 건지 모르겠지만, 이 모자에게 허구와 진실의 경계는 처음부터 흐릿 했던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요?. 어머니의 기대 안에서 자란 자아는 진짜 내 것인가? 니나 없이 로맹이 글을 썼을까요? 이 질문에 단정 지어 답하기 어렵습니다만 로맹이 66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습니다. 어머니라는 거대한 존재가 사라진 뒤, 그의 내면에 남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저는 한동안을 생각하게 했어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에 따르면, 주 양육자와의 관계가 개인의 정서적 안정과 자아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애착 이론이란 영국 정신분석학자 존 볼비(John Bowlby)가 제안한 이론으로, 어린 시절의 주요 관계 경험이 이후 심리적 구조 전체를 형성한다는 관점입니다. 니나와 로맹의 관계는 이 이론의 가장 강렬한 실례처럼 보였습니다(출처: John Bowlby, Attachment and Loss / 영국 정신분석학회).

로맹에게 니나는 단순한 어머니가 아니라 삶의 의미 구조 자체였던 셈입니다. 그 구조가 사라졌을 때 남은 공백이 얼마나 컸을지, 영화는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말은 충분히 말하고 있습니다.

 

 

 

모성 집착,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

영화에서 제가 가장 불편했던 장면 중 하나는 니나가 자신의 당뇨 사실을 로맹에게 숨기는 부분이에요. 아들이 자신의 병세를 알면 꿈을 포기할까 봐, 혹은 무너질까 봐 감췄다는 것. 이 선택이 아름다운가, 아니면 아들의 판단권을 빼앗은 것인가? 저는 처음엔 후자에 더 무게를 뒀어요.

하지만 250통의 편지를 미리 써둔 장면에 이르자 관점이 흔들렸습니다. 그건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자기 죽음 이후까지 아들의 심리적 안전망을 설계한, 어쩌면 가장 치밀하고 헌신적인 사랑의 형태였던 것 같아요. 그 장면에서 제 가슴이 출렁거렸습니다. 제 엄마도 저 몰래 이런 걱정을 얼마나 많이 해왔을까 싶네요.

 

그럼에도 한 가지 반박하고 싶은 건, 니나의 사랑이 로맹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은 분명하지만, 그 날개가 니나의 손에서만 작동하는 것이었다면 어떨까요? 로맹의 삶의 궤적이 그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니나의 서사 구조는 문학 비평 용어로 모성 서사(Maternal Narrative)에 해당합니다. 모성 서사란 어머니의 욕망과 희생이 자녀의 성장 서사를 구동하는 동력이 되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 이 구조를 떠올리면 영화의 제목이 다시 보입니다. '새벽의 약속'이란 단지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약속이 아니라, 어머니가 스스로 자신의 삶 전체를 걸어 지키려 한 약속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생각해 볼 핵심 질문들을 정리했습니다.

  • 부모의 기대가 자녀의 자아 형성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제한하는가?
  • 죽음 이후까지 이어진 헌신은 사랑의 완성인가, 통제의 연장인가?
  • 어머니 없이 로맹 가리는 존재할 수 있었는가?

 

부모의 기대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그 기대가 두려움에서 왔는지 믿음에서 왔는지 한 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이 관계를 바꿔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사랑의 무게는 받을 때는 묵직하고,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전체 윤곽이 보이는 것 같고 실감한다는 것. 저도 그 이불속에서 엄마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설계였는지, 한참 지나서야 알았으니까요. 이 영화가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그게 정상입니다.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니나를 다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그 편지 250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만 더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 많이 생각하게 되는 영화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