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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킷 리스트 (시한부 선고, 자기실현, 삶의 기쁨)
영화 버킷 리스트 (시한부 선고, 자기실현, 삶의 기쁨)

살면서 한 번 쯤은 생각하게 되는 버켓 리스트. 자신만의 버킷리스트가 필요할 땐 이 영화를 보면서 정리 하면 좋을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가병동에서 만난 한 노인이 제 인생관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줄은 몰랐거든요. 성공만을 쫓다 고립된 채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저와, 평생 가족만을 위해 살다 병을 얻은 그 노인의 이야기는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서사와 너무도 닮아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죽음을 앞둔 이들의 슬픔을 짜내는 신파극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집니다. 누구나 맞이하게 될 삶의 유한함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진짜 행복과 가치가 무엇인지 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미학적 분석을 통해 총정리해 드립니다.

시한부 선고가 바꿔놓은 것들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남은 시간이 1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해방감 같은 건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항상 '미리 안다면 오히려 홀가분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상황이 되니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지금껏 일에만 매달리느라 놓쳐버린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영화 속 에드워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16살부터 돈을 벌기 시작해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은 그는, 한때 역사 교수를 꿈꿨지만 딸 버지니아가 태어나면서 생계를 위해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45년이 흘렀지만 돌아가지 못했고, 그 45년이 열쇠 구멍 너머처럼 좁고 빠르게 지나갔다고 고백합니다. 저 역시 그 대사에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방식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거든요.

여기서 실존적 고뇌(existential crisis)란 개념이 등장합니다. 실존적 고뇌란 자신의 삶이 진정 의미 있는가를 묻는 근원적인 불안으로, 죽음이라는 유한성에 직면했을 때 가장 강렬하게 촉발됩니다. 심리학자 어빈 얄롬(Irvin Yalom)은 인간이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에야 비로소 진짜 삶의 질문을 시작한다고 말했습니다. 에드워드가 암 수술 당일 생존 확률 5%라는 선고를 받고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 그리고 카터를 만나 버킷 리스트를 함께 적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이 실존적 고뇌가 만들어낸 변화였습니다.

자기실현의 구조 - 버킷 리스트가 드러낸 삶의 의미

제가 어릴적 한 병동 침대 머리맡에서 노인과 함께 버킷 리스트를 적을 때, 처음에는 그게 유치한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종이에 하나씩 써 내려가다 보니, 그 목록은 단순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제가 평생 억눌러온 자아의 목록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영화에서도 카터가 건네준 버킷 리스트 쪽지를 에드워드가 처음에는 비웃었지만, 결국 함께 목록을 수정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스카이다이빙,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에게 키스하기, 웅장한 광경 목격하기 등 그 항목들은 단순한 스릴 추구가 아니라 두 사람이 각자 억눌러온 감정과 욕망을 꺼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가 제시한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 개념은 이 장면들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자기실현이란 인간이 욕구 위계의 최상위 단계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매슬로는 자기실현이 반드시 거대한 성취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경험의 축적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APA).

이 영화가 영리한 지점은 두 캐릭터의 티키타카를 통해 이 과정을 설교 없이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카터에게 돈과 추진력을 주었고, 카터는 에드워드에게 감정과 관계를 돌려주었습니다.

버킷 리스트 이행을 통해 드러난 자기실현의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오랫동안 억압해온 욕망을 언어로 꺼내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시작
  • 타인과의 공유를 통해 자신의 욕망에 정당성이 부여됨
  • 신체적 경험(스카이다이빙 등)이 인지적 성찰을 촉진하는 체험적 학습으로 기능
  • 죽음이라는 공통 조건이 두 사람 사이의 계층 장벽을 무너뜨림

삶의 기쁨을 측정하는 두 가지 질문

에베레스트(티베트인들이 초모룽마, 즉 눈의 여신 어머니라 부르는 산) 26,000피트에서 에드워드가 들었다는 '산의 소리'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낮에도 하늘이 검게 보이고, 햇빛이 천국 바닥의 작은 구멍처럼 보인다는 묘사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라, 일상의 소음에서 완전히 벗어난 순간 비로소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삶의 기쁨'이라는 개념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카터가 에드워드에게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기쁨을 찾으세요." 그리고 영화 전반을 감싸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기쁨을 찾았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까?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 분야에서는 이 두 질문을 각각 쾌락적 행복(hedonic well-being)과 자기목적적 행복(eudaimonic well-being)으로 구분합니다. 쾌락적 행복이란 즐거움과 고통의 균형에서 오는 주관적 만족감이고, 자기목적적 행복이란 타인과의 관계, 의미, 성장에서 비롯되는 더 깊은 충족감을 뜻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임종을 앞둔 환자들이 후회하는 것은 대부분 쾌락적 경험의 부재가 아니라, 자기목적적 행복을 추구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출처: 미국국립보건원 NIH).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병동에서 노인과 함께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던 시간, 스카이다이빙 후 착지하던 순간의 해방감은 단순한 스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안에 오랫동안 눌려 있던 감각이 한꺼번에 깨어나는 경험이었고, 동시에 그 노인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면서 타인의 삶에 기쁨을 가져다줬다는 느낌도 함께 왔습니다. 두 가지 행복이 동시에 교차한 드문 순간이었습니다.

자본주의적 판타지라는 비판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영화에 대해 자본주의적 판타지라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비판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봅니다. 에드워드가 보유한 거대 자본은 분명 버킷 리스트 이행의 절대적인 동력이었습니다. 에베레스트까지의 이동, 사파리, 전용기 여행은 일반 관객이 따라 할 수 없는 규모입니다. 이 점에서 영화는 보편적 공감보다는 특정 계층의 낭만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버킷 리스트의 내용이 아니라, 그 목록을 작성하는 행위 자체였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콜 그룹이 7년간 15개의 공립 병원을 민영화하며 병원은 건강 휴양지가 아니라는 원칙을 고수하던 에드워드가, 정작 자신이 그 병원에 입원해 1인실도 거부당하는 아이러니한 장면은 자본이 삶의 의미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내러티브 아크(narrative arc)라는 개념이 여기서 유효합니다. 내러티브 아크란 등장인물이 이야기 전반에 걸쳐 겪는 내적 변화의 궤적을 의미하는데, 에드워드의 아크는 자본과 성공의 정점에서 시작해 관계와 용서의 회복으로 마무리됩니다. 에밀리와의 화해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냥 부자의 버킷 리스트 여행기로 끝났을 겁니다.

서사의 깊이를 여행지의 화려한 미장센 뒤로 다소 안일하게 숨긴 측면이 있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습니다. 죽음 앞의 실존적 성찰이 조금 더 무겁게 다뤄졌다면, 이 작품은 가벼운 감동 영화를 넘어 더 오래 남는 작품이 됐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가 81세의 나이에 눈을 감고 마음을 열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여전히 가슴 어딘가를 건드립니다.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그리고 그 기쁨을 타인과 나누었는가. 이 두 질문은 어떤 버킷 리스트보다 먼저 답해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여행지나 스릴 넘치는 모험이 없어도,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 질문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제 경험상, 병동에서 보낸 그 시간이 지금껏 살면서 가장 찬란했던 계절이었던 이유가 그것이었습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DQmardjKr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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