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 영화가 실화라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스포츠 영화라고 생각하고 틀었는데, 30분이 지나도록 코트 장면보다 부모 얼굴이 더 많이 나왔습니다. 영화 라이즈(2022)는 NBA 스타 야니스 아데토쿤보의 성공담이 아니라, 그 성공을 가능하게 한 가족의 생존 기록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스크린 대신 다른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던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빠져드는 이야기와 성공 뒤에 숨겨진 가족의 생존 위한 이야기가 마음을 울리는 영화 '라이즈'입니다.
이민자 가족이 그리스에서 버텨낸 방식
나이지리아에서 온 찰스와 베로니카 부부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리스로 건너왔지만, 합법적인 체류 자격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불법 체류자(undocumented migrant)의 현실 그대로였습니다. 불법 체류자란 입국 자체는 했지만 해당 국가의 정식 비자나 거주 허가 없이 체류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경찰의 눈을 피해 창문으로 건물을 빠져나오는 장면이 영화 초반에 나오는데, 저는 그 장면에서 웃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실제로 이 가족이 매일 감내했던 공포의 밀도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부부는 그리스 정착 이후 영주권(permanent residency) 취득을 위해 수차례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합니다. 영주권이란 외국인이 해당 국가에서 장기 합법 체류를 인정받는 신분으로, 이것이 없으면 의료·교육·취업 등 모든 기본권이 불안정해집니다. 부부가 관광지에서 물건을 팔아 생계를 이어간 것은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선택지였습니다. 유럽연합 내 비정규 이민자 수는 전체 이주자 규모(비유럽 출신 이주자, 202년 기준) 약 4,000만 명으로 추정되며, 이들 중 상당수가 합법적 노동 시장 진입 자체가 막힌 상태에서 비공식 경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출처: 유럽연합 기본권청(FRA)).
제가 이 영화를 "희망의 스포츠 드라마"로 읽으려는 시선에 먼저 제동을 걸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는 강제 추방의 위협, 서류 한 장으로 갈리는 인간의 존엄을 배경으로만 처리합니다. 이 구조적 폭력을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해야 할 '장애물'쯤으로 그린다면, 그건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서사로 희석시키는 셈입니다. 감독 '아킨 오모토소'의 선택이 아쉬운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다른 성공 실화물과 구별되는 이유는, 영웅 한 명의 탄생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단위 전체가 함께 버텨낸 과정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숨을 멈춘 장면은 야니스가 형 타나시스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며 이미지 트레이닝(image training)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미지 트레이닝이란 실제 동작을 수행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운동 수행 능력을 향상시키는 심리 훈련 기법입니다. 가르쳐줄 사람이 없으면 눈으로 훔치면 된다는 것. 저도 중학교 2학년 겨울, 코치도 클럽도 없는 공터에서 손이 골아터지도록 슛 연습을 하던 시절에 그렇게 배웠습니다. 더 잘하는 애들 움직임을 몇 번이고 눈에 새겨뒀다가 혼자 따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 장면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NBA 드래프트와 생존 서사가 만나는 지점
야니스와 타나시스 형제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NBA 드래프트(NBA Draft)를 앞두고서였습니다. NBA 드래프트란 미국 프로농구리그(NBA) 구단들이 매년 신인 선수를 지명하는 공식 절차로, 지명 순위에 따라 선수의 연봉과 커리어 시작점이 크게 달라집니다. 드래프트 당일, 야니스를 응원하는 가족 모두가 결과 발표에 집중하는 장면은 사실상 이 영화 전체의 압축입니다. 지명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와, 그 공포를 함께 버티는 사람들의 얼굴.
야니스는 결국 2013년 NBA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벅스(Milwaukee Bucks)에 전체 15순위로 지명됩니다. 그런데 영화가 포착한 진짜 아이러니는 그 이후에 있습니다. 야니스가 그리스 국적을 얻은 것은 NBA 드래프트 이후였고, 그것도 그리스 농구 국가대표팀에 출전시키기 위한 목적이 컸습니다. 국가는 쓸모가 생겼을 때 비로소 문을 열었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며 제가 계속 떠올린 건 베로니카가 나이지리아에 두고 온 첫째 아들 프랜시스의 사진을 바라보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눈빛에는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의 얼굴. 저는 그 정적 속에서 제 어머니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 희생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감각. 제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스크린이 아니라 과거의 제 손등을 바라보고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야니스 역 우체 아가다, 타나시스 역 랄 아가다는 실제 형제로 영화 데뷔 신인임에도 자연스러운 연기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 감독 아킨 오모스는 다수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출신으로, 이 영화에서 직접 아미들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 영화는 Disney+ 오리지널 작품으로, 2022년 공개되었습니다.
- 야니스는 현재까지 NBA MVP(Most Valuable Player) 수상 경력을 포함해 밀워키 벅스의 NBA 챔피언십 우승을 이끈 핵심 선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출처: NBA 공식 사이트).
스포츠 사회학(sports sociology)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면 또 다른 층위가 보입니다. 스포츠 사회학이란 스포츠와 사회 구조의 관계, 즉 계층·인종·이민 등 사회적 요인이 선수 발굴과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아데토쿤보 가족의 이야기는 재능 있는 이민자 2세가 제도적 장벽 없이 스포츠를 통해 계층 이동을 이룬 사례이지만, 동시에 그 경로가 얼마나 우연과 행운에 의존했는지를 함께 보여줍니다. 야니스 같은 재능을 가지고도 서류 문제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이 그리스의 어딘가에 여전히 있을 것입니다.
라이즈는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그리고 저는 감동적일수록 더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감동이 구조의 문제를 덮어버리는 역할을 할 때, 그 영화는 의도치 않게 현실을 미화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여느 성공 실화물과 다른 이유는 하나입니다. 가족 전체가 함께 버텨낸 밀도 있는 서사. 그것이 관객의 가슴을 건드리는 진짜 이유입니다.
성공한 개인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영화가 많은 세상에서, 라이즈는 그 성공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직접 본편을 보시길 권합니다. 야니스를 알고 보면 더 좋지만, 몰라도 충분히 가슴 벅찬 풍부한 이야기가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 Total
- Today
- Yesterday
- k영화
- 심리 스릴러
- 힐링영화
- 생존영화
- 액션영화
- 마블영화분석
- OST 분석
- 영화 리뷰
- 스릴러 영화
- 힐링 드라마
- 넷플릭스 드라마
- 이민자 영화
- 감동영화
- 영화리뷰
- 인생영화
- 범죄 영화
- 픽사 애니메이션
- 인디 드라마
- 영웅영화
- 한국드라마
- MCU영화추천
- 가족영화
- 인공지능슈트
- 스릴러 영화 추천
- 가족 영화
- 로맨스영화
- 한국영화
- 넷플릭스 영화
- 미장센연출
- 액션 영화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 1 | 2 | |||||
| 3 | 4 | 5 | 6 | 7 | 8 | 9 |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3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