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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30대 공시생 — 무너진 건 시험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 첫사랑 재회 — 가장 보여주기 싫은 모습으로 다시 만났을 때
- 자존감 붕괴 — 회복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드라마를 보다가 잠깐 멈춘 적 있으신가요? 용식이 병원 대기실에 앉아서 접수창구를 바라보는 장면이었는데요. 아무 말도 없는데 그 등이 너무 익숙하게 느껴졌거든요. 2021년 KBS2에서 방영된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은 31세 공시생 도용식이 6년째 제자리를 맴돌다가, 첫사랑 이루다를 비뇨기과 진료실에서 환자로 재회하는 이야기입니다. 설정은 코미디지만 건드리는 건 진짜 아픈 부분이에요. 취업난, 비교, 자존감 붕괴. 누군가는 이걸 웃으면서 볼 수 없을 거예요. 이 드라마가 특별한 건, 용식을 한 번도 한심한 인간으로 단정 짓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무너진 사람이 다시 고개를 드는 과정을 억지 감동 없이, 웃기면서도 아프게 보여주거든요. 30대 공시생, 첫사랑 재회, 자존감 붕괴. 이 세 키워드가 이 드라마의 전부이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30대 공시생 : 무너진 건 시험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용식이 딱 불쌍한 캐릭터냐고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가장 솔직한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31세, 6년째 9급 공무원 시험 준비 중, 전 여자친구한테 차이고, 뱃살만 늘고. 외부에서 보면 한심해 보일 수 있는데, 이 드라마는 그 한심함 뒤에 뭐가 있는지를 천천히 보여줍니다.
저도 비슷한 시절이 있었어요. 취준 3년 차 되던 해에 저는 이미 '내가 뭔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렸거든요. 면접에서 탈락하는 게 실력 때문이 아니라 '역시 나니까'로 해석되는 순간이 온 거예요. 용식도 똑같습니다. 그는 시험에 실패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에 먼저 실패한 거예요.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드라마에서 30대 공시생이라는 설정이 단순히 취업난을 보여주는 소재가 아니라는 게 포인트예요. 용식이 시험을 계속 보는 건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틀 안에 있는 동안은 실패를 '아직 준비 중'이라고 합리화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 함정에 빠지곤 하죠. 시작을 미루면서 '준비가 덜 됐다'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진짜 무서운 건 시험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숨어버리는 거예요.
용식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건 루다를 만나서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진 순간부터예요. 가장 보기 싫었던 자기 모습이 첫사랑 앞에 그대로 드러났을 때, 그제서야 현실을 직면하게 되는 거거든요. 회피가 불가능해진 순간이 오히려 시작이 된 거예요. 이 드라마가 말하는 건 결국 이겁니다. 무너진 건 환경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고, 회복도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요.
💬 지금 '준비 중'이라는 말 뒤에 숨고 있다면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는 진짜 준비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실패가 무서워서 시작을 미루고 있는 건지요. 그 질문 하나가 방향을 바꿔줄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준비된 시작은 없어요.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먼저입니다.
첫사랑 재회 : 가장 보여주기 싫은 모습으로 다시 만났을 때
이 드라마의 설정이 왜 이렇게 강렬하냐면, 단순히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내가 가장 보여주기 싫은 모습으로, 그것도 병원 진료실에서 환자로 마주치는 거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상상하기 싫은 첫사랑 재회 시나리오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어요. 백수 생활 2년 차 때, 고등학교 동창을 편의점에서 마주쳤거든요. 그 친구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퇴근길이었고, 저는 낮 두 시에 라면 사러 나온 상태였어요. 반가움보다 먼저 온 게 도망치고 싶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저 친구는 나를 지금 어떻게 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거든요.
용식도 딱 그 감각이었을 거예요. 루다를 다시 만나고 싶었겠지만, 이 모습으로는 절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건, 용식이 그 상황을 피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창피해도 다시 그 진료실로 발걸음을 옮기잖아요. 처음에는 치료 때문이었겠지만, 그 발걸음이 쌓이면서 점점 자기 자신과도 마주하게 됩니다.
다르게 말 하자면, 드라마가 이 설정을 웃음 코드로 많이 소비하는 건 아쉬운 부분이에요. 비뇨기과 증상이 자존감 붕괴의 은유라는 건 영리한 설정인데, 가끔 그게 진지하게 다뤄지기보다 웃음 포인트로 넘어가는 장면들이 있거든요. 실제로 비슷한 상황을 겪는 분들께는 그 웃음이 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완전히 틀린 선택도 아닙니다.
그래도 이 드라마가 잘한 건, 루다가 용식을 불쌍하게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당황스러워하고, 어색해하고, 때로는 답답해하지만, 한 번도 그를 내려다보지 않아요. 그 시선 자체가 용식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다른 종류의 거울인 셈이에요.
💬 창피한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 완전히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피하지 않고 버텼을 때, 그게 나중에 생각보다 큰 자산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가장 보여주기 싫었던 모습을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게 봐줬을 때, 그게 의외로 자존감 회복의 시작이 되거든요.
자존감 붕괴 : 회복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자존감 붕괴라는 말, 요즘 너무 흔하게 쓰여서 오히려 가볍게 느껴질 때가 있죠. 그런데 용식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자존감이 붕괴된다는 건 그냥 자신감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이미 틀린 사람'으로 규정하는 거예요. 그 순간부터 모든 선택이 그 규정 안에서 이뤄지게 됩니다.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취준 마지막 해에 저는 이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역시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면접장에 들어갔거든요. "어차피 떨어질 텐데 왜 잘 보이려 노력하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자존감 붕괴의 가장 무서운 형태입니다. 포기를 포기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요.
동의하는 부분은, 이 드라마가 자존감 회복의 과정을 절대 쉽게 그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용식은 나아지는 듯하다가 또 무너지고, 또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바닥을 치거든요. 그 반복이 현실적으로 맞습니다. 자존감은 한 번의 성공이나 한 사람의 응원으로 단번에 회복되지 않아요.
반박 리뷰는, 루다와의 관계가 용식 회복의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동기에서 자존감 회복이 시작되면, 그 사람이 없어졌을 때 어떻게 될지가 걱정되거든요. 보충하자면, 드라마 후반부에서 용식이 루다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기준으로 행동하기 시작하는 장면들이 있어요. 그 부분이 사실 이 드라마의 핵심입니다. 그때부터 진짜 달라지거든요.
자존감 회복은 결국 비교의 기준을 바꾸는 데서 시작됩니다. 남이 어디쯤 있냐가 아니라, 내가 어제의 나보다 뭘 하나 더 했냐를 보는 거예요. 용식이 마지막에 고개를 드는 건, 루다가 봐줘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기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 자존감이 바닥일 때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그 인정에 의존하게 되면 그게 또 다른 덫이 됩니다. 하루에 딱 하나, 내가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는 작은 것을 만들어보세요. '오늘 나는 이걸 했다'는 문장 하나가 쌓이면, 어느 순간 외부의 인정 없이도 버틸 수 있는 근육이 생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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